가격 급등이 꼭 “수요 폭발” 때문만은 아닙니다. 공급이 어디로 먼저 가느냐가 바뀌면 가격이 먼저 튑니다. 요즘 PC 메모리(RAM, DRAM)가 그렇습니다. 겉으로는 램이 모자라 보이지만, 실제로는 PC용으로 돌아올 물량이 줄어든 상황에 가깝습니다.
DRAM 업계는 과잉공급을 여러 번 겪었습니다. 많이 만들면 좋을 것 같아도, 한 번만 삐끗하면 가격이 크게 무너지고 재고가 쌓입니다. 그래서 업체들은 요즘 “무조건 물량 확대”보다 수익이 더 좋은 제품과 고객을 먼저 채우는 방식을 택합니다. 지금 그 중심에 AI가 있습니다.
특히 HBM처럼 단가가 높은 제품은 회사 내부에서도 생산·패키징·인력 배정에서 우선순위가 높습니다. 그 결과, 같은 회사가 DRAM을 만들더라도 PC에 쓰이는 범용 DRAM(DDR4/DDR5) 물량은 예전만큼 넉넉하게 나오기 어렵습니다.
수요 쪽에서도 PC가 유리하지 않습니다. 클라우드 사업자와 대형 서버 고객은 보통 장기 계약으로 물량을 먼저 확보합니다. 가격이 오를 조짐이 보이면 그 속도는 더 빨라집니다. 이렇게 되면 시장에 “그냥 살 수 있는 물량”이 줄어듭니다.
PC 쪽은 특히 조립·리테일·중소 OEM이 이런 물량에 더 많이 의존하는 편이라, 가격 변동을 더 직접적으로 맞습니다. 그래서 같은 DRAM 가격 상승이라도 PC 사용자가 더 빠르게 체감합니다.
여기서 DDR4가 특히 더 오르는 이유가 나옵니다. DDR5로 넘어가는 흐름은 분명하지만, DDR4 수요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기업 현장 PC, 산업용 장비, 구형 플랫폼, 비용 민감한 제품군이 계속 DDR4를 씁니다.
그런데 공급은 반대로 움직입니다. 업체들이 DDR4 비중을 줄이거나 생산 라인을 다른 쪽으로 전환하면서 DDR4가 부족해지기 쉬운 구조가 됩니다. 그래서 “구형이니까 싸야 한다”가 아니라, 구하기 어려우면 비싸진다가 적용됩니다.
이 상황에서는 DDR4가 DDR5보다 비싸게 보이는 현상도 충분히 나올 수 있습니다.
PC 시장의 체감이 큰 것도 구조적으로 설명됩니다. 램 가격은 칩 ⇀ 모듈(UDIMM/SO-DIMM) ⇀ 완제품 원가 ⇀ 소비자가 순서로 넘어갑니다.
서버 고객은 계약과 협상력으로 충격을 일부 흡수하지만, PC 쪽은 현물 가격 변화가 모듈 가격에 빨리 반영되고, 그게 바로 판매가에 얹힙니다. 그래서 “DRAM 가격이 올랐다”가 PC 사용자에게는 바로 구매 비용 증가로 연결됩니다.
정리하면 이번 급등은 세 가지가 함께 만든 결과입니다.
첫째, AI용(특히 HBM) 중심으로 생산·패키징 자원이 배분되면서 범용 DRAM 공급이 줄었다.
둘째, 대형 서버·클라우드 고객이 장기 계약으로 물량을 먼저 확보해 PC 쪽에 남는 물량이 줄었다.
셋째, DDR4는 수요가 남아 있는데 공급은 줄어들면서 가격이 더 민감하게 올랐다. 이 조합이 가격을 끌어올립니다.
그리고 이 흐름은 “내일부터 바로 정상화”되기 어렵습니다. 생산능력 확대는 시간이 걸리고, 업체들은 과잉공급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당분간은 공급이 조금만 타이트해져도 가격이 빠르게 반응할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 PC 램이 비싼 이유는 단순 유통 문제가 아니라, 생산과 물량 배정이 PC에 불리하게 돌아가는 구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