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이 한창이던 시기, 미국은 한 가지 불편한 질문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지상 지휘부가 사라지면, 누가 전쟁을 통제하는가.”
그 질문의 답으로 등장한 것이 공중지휘통제기 E-4B, 통칭 ‘나이트워치’다. 이 항공기는 화려한 기술의 결정체라기보다, 국가 기능이 붕괴된 상황을 전제로 설계된 비상 장치에 가깝다. 대통령과 국방장관, 합참 지휘부가 더 이상 워싱턴의 벙커에 있을 수 없을 때, 미국은 지휘소 자체를 하늘로 올렸다.
E-4B는 흔히 “핵전쟁용 비행기”로 불리지만, 이 표현은 절반만 맞다. 핵무기를 싣지도, 직접 발사하지도 않는다. 이 비행기의 역할은 단순하다. 지휘 체계가 끊어지지 않게 만드는 것, 그 한 가지다. 통신이 살아 있고 명령이 전달되면, 전쟁은 ‘관리’될 수 있다는 믿음이 그 출발점이다.
그래서 E-4B는 VIP 수송기가 아니라 공중 국가운영센터로 설계됐다. 내부는 회의실, 작전통제 구역, 통신실, 브리핑 공간으로 나뉘어 있고, 수십 명의 참모와 군·민간 요원이 동시에 근무할 수 있다. 전시에는 100명 이상이 탑승해 합참과 거의 동일한 기능을 수행한다. 이 비행기 안에서는 보고가 올라오고, 판단이 내려지고, 명령이 전파된다.
생존성은 설계의 핵심이다. E-4B는 핵폭발로 발생하는 전자기펄스(EMP)를 견디도록 전자계통을 보호했고, 방사선과 열 효과를 고려한 차폐 구조를 갖췄다. 단순히 “튼튼한 비행기”가 아니라, 핵전쟁 환경에서도 작동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공중급유를 전제로 하면 장시간 체공도 가능하다. 지상이 불안정할수록, 이 비행기는 오래 떠 있어야 한다.
운용 방식도 그 전제를 따른다. E-4B는 평시에도 항상 대비 태세에 들어가 있다. 최소 한 대는 24시간 대기 상태를 유지한다. 훈련과 실제 임무의 경계는 흐릿하다. 핵전쟁뿐 아니라, 대규모 재난이나 국가 비상사태에서도 통신·지휘 허브로 투입될 수 있다. “최악의 경우”만을 위해 존재하지만, 준비는 늘 현재형이다.
다만 이 체계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현역 기체는 단 네 대뿐이다. 정비와 훈련, 상시 대기를 동시에 감당하기엔 여유가 없다. 게다가 플랫폼은 1980년대에 만들어졌다. 개량을 거듭해 왔지만, 노후화는 피할 수 없다. 유지 자체가 전략 과제가 된 상황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E-4B를 영구적으로 끌고 갈 생각이 없다. 후속 사업인 SAOC는 단순한 교체가 아니라, 핵 지휘통제 체계를 처음부터 다시 짜는 프로젝트다. 향후 등장할 E-4C는 더 개방적인 시스템 구조와 현대화된 통신 환경을 전제로 한다. 핵심은 같다. 지상이 무너져도, 지휘는 살아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E-4B를 다른 핵 지휘통제 항공기들과 비교하면 미국의 사고방식이 더 분명해진다. 국가 지도부를 위한 공중 지휘소(E-4 계열)와, 잠수함·ICBM과의 통신을 담당하는 플랫폼(E-6, E-130 계열)을 분리해 운용한다. 하나가 흔들려도 전체가 멈추지 않게 하려는 구조다. 중복과 분산은 비효율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결국 E-4B는 핵전쟁을 일으키는 장치가 아니다. 핵전쟁이 통제 불능으로 치닫지 않게 하기 위한 장치다. 버튼을 누르는 기계가 아니라, 버튼이 언제, 어떻게 눌려야 하는지를 판단할 시간을 벌어주는 시스템이다.
이 비행기가 상징하는 것은 기술의 과시가 아니다. 오히려 미국 스스로에 대한 불신에 가깝다. 지상 권력은 언제든 붕괴될 수 있고, 통신은 끊길 수 있으며, 합리성은 위기 속에서 쉽게 사라진다는 전제. E-4B는 그 불신 위에 세워진, 냉정하고 불편한 대비책이다.
그리고 그 전제는, 여전히 유효하다.